에릭 홉스봄,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경일 옮김, 까치 펴냄)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12-11-04 01: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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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곧 정치다

- 마르크스를 다시 진지하게 읽는 시대를 위해

[김민웅의 '리브로스 비바'] 에릭 홉스봄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기사입력 2012-11-02 오후 7:09:30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

모리스 돕, 크리스토퍼 힐, 로드니 힐턴, 빅터 키어넌, 조지 루드 그리고 E. P. 톰슨. 이 이름은 모두 당대 최고의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의 명단이다. 여기에 에릭 홉스봄(1917~2012년)이 함께 한다. 이 인물들은 모두 1946년 창설되었던 영국 공산당의 '역사가 그룹'(1992년 '사회주의 역사회'로 개칭) 출신으로, 당시 영국에서 위력을 떨치기 시작했던 냉전 정치의 선봉에 선 매카시즘과 학문적으로 대결했던 지식인들이었다.

이런 맥락을 주시하면, 홉스봄이라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역사가의 출현은 단지 그의 역량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지식인 집단의 존재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하게 되는 것은, 진보 정당이 역사학이라는 학문에 매우 치열한 집단적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역사가 곧 정치와 직결된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홉스봄은 역사학자로서 정치의 역할을 끊임없이 강조해왔고 그것은 현실에서 변화를 목표로 한 실천이라는 점에서도 그의 마르크스주의 사관과 일치했다. 그런 까닭에 그의 마지막 저작의 제목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이경일 옮김, 까치 펴냄)로 되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마르크스와 역사 그리고 정치

▲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릭 홉스봄 지음, 이경일 옮김, 까치 펴냄).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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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떻게 구축되어갔는지 그 초기의 시점부터 분석하고 있으며, 마르크스 사후 그의 사상과 이론적 작업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변화되어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의 시대에서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새롭게 성찰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그런데 에릭 홉스봄의 마르크스에 대한 해설과 이해는 사회적 변화를 위한 실천이라는 점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정치의 문제와 역시 직결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학자 홉스봄의 마르크스 해석이기도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 대한 그의 이론적 결론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흔히 마르크스의 이론적 저작들이 주목하는 최대의 관심은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규명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관계이며 이것을 풀어나가는 '정치'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을 넘어서 변화에 대한 실천의 강조는 바로 이 정치의 복원과 재편에 대한 그의 철학적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각도로 보자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 정치 조직인 정당에서 중요한 이론적 활동과 연구 작업을 했다는 것은 매우 타당해보일 수밖에 없다. 홉스봄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의 그람시를 다루는 대목에서 이러한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람시에게 정치는 승리하는 사회주의 전략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자체의 핵심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르크스를 인용하면, 인간이 "싸워서 해결하는" 방법이다. 혁명의 근본 문제는 이제까지의 하층 계급을 어떻게 헤게모니적으로 만들고, 잠재적인 지배 계급으로서 자신을 믿게 하고 다른 계급들에게 그렇게 믿음을 주는가이다. 여기에 그람시가 보기에 정당(현대의 군주)의 중요성이 있다. 그는 노동 계급이 자신의 의식을 발전시키고 자연 발생적인 경제적-조합적 혹은 노동조합적 단계를 극복하는 것은 정당의 운동과 조직을 통해서뿐이라는, 즉 그가 보기에는 정당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정치의 복원 vs. 자본의 지배

홉스봄의 그람시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홉스봄 자신의 삶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의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공산당원이고 그 안에서 활동한 역사학자라는 사실로 집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과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이 정당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정당인이면서도 지식인으로서의 독자성을 가진 면모는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의 지적 자존심이자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정치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 기본명제라고 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마르크스주의 해방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엔리크 뒤셀은 그의 <정치에 관한 21개의 테제(Twenty Theses on Politics)>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의 철폐를 부르짖는다. 정치를 자본의 논리에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철폐는 곧 인간의 삶을 부인하는 것이다. 정치는 인간에게 가장 적절한 직업이자 소명이다."

대공황기를 지나고 있던 1936년에 영국에서 '레프트 북 클럽'이 만들어져서 좌파의 지식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는데, 여기서 좌파 정치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날린 해럴드 라스키, 런던정경대학(LSE)의 창설자이고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의 중심 인물인 시드니 웹 부부 등의 책을 출간했다. 레프트 북 클럽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팜 덧을 들 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의 주축이었다. 홉스봄은 팜 덧을 추모하면서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인 역사가"라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레프트 북 클럽과 팜 덧

팜 덧은 인도 출신의 영국인으로서, 영국 공산당을 이끈 지도적 인물인 동시에 역사학자로 대단히 뛰어난 통찰력을 보인 지식인이었다. 그는 유럽 노동 운동의 패배는 파시즘을 가져올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했고, 1936년에 레프트 북 클럽에서 낸 <세계 정치 : 1918-1936>에서 세계 대전의 발발에 대한 흐름을 정확히 분석, 예견했다. 이는 세계 자본주의의 내면적 구조와 성격에 대한 명징한 이해가 기초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는 세계 시장을 창출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진입하면서 전 세계를 경제 관계 망으로 서로 더욱 가깝게 재편해냈다. 그런데 이는 여전히 노예적 노동과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세계 통합은 적대적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자본이 독점 체제 구축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적대적 관계는 누군가를 배타적으로 배제하려 들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그 갈등을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해결하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팜 덧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증명해냈는데, 홉스봄의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바로 이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을 그가 만들어 낸 "장기 19세기"(the long nineteen century, 조반니 아리기가 이후 이를 따서 "장기 20세기"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의 개념으로 분석해낸 것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까지의 장기 19세기는 부르주아 체제의 세계적 확장 과정이었고, 그 결과는 홉스봄이 "극단의 세기"라고 부른 20세기의 끔찍한 전쟁으로 인류를 몰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꾸준히 정리해온 홉스봄의 지적 뼈대에 있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이다. 따라서 그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가 진보가 아닌 비극으로 굴러 떨어지고 오늘날에는 자본의 지배가 위력을 발휘하는 듯했으나 자본의 틀 자체가 동요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마르크스를 다시 진지하게 읽는 것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이 강조하는 핵심은?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활동했던 당시 그는 허버트 스펜스에 비해 거의 무명에 다를 바 없었으나, 오늘날 '구글' 검색에서 다윈과 아인슈타인만 그의 명성을 앞지를 뿐 애덤 스미스와 프로이트도 그의 뒤에 있다고 한다. 이런 마르크스의 사상적 위력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만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도리어 주목할 정도가 되었다. 홉스봄은 그가 가장 주력했던 논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것은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끌어올리는 자기 능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성장의 들쭉날쭉한 리듬이 주기적 과잉 생산의 위기를 초래하며, 이런 과잉 생산의 위기는 조만간 자본주의적 경제 운영 방식과 양립하기 어렵게 되면서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낼 것이고, 자본주의는 이런 갈등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홉스봄에 따르면, 이러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견해는 초기에 파급력을 갖지 못했으나 1870년대 세계 경제의 위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면서 특히 세계적 변혁 운동과 제3세계 해방 정치가 등장한 1960년대와 1970년대 등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재평가 되고 재해석되었다.

하지만 냉전의 붕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배로 세계사가 이어지면서 마르크스주의는 퇴조의 단계로 접어들었고 "실패한 신"의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런데 홉스봄이 보기에, 이러한 상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세계 자본주의 작동 방식에 균열이 생기면서 마르크스는 다시 호출되고 있다.

좌와 우를 넘어서 마르크스를 다시 호출

"자본주의의 미래가 사회 혁명의 위협이 아니라 속박되지 않는 전 세계적인 작동이라는 그 자신의 본성 때문에 의문시될 것이라는 사실을 자본주의에게 되새기는 세상이 되면, 마르크스는 다소 예상하지 못하게 회귀할 것이다. 그런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인 작동에 관해서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의 합리적 선택과 자유 시장의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신봉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통찰력 있는 길잡이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홉스봄의 예견대로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는 "1973년에서 2008년 동안의 시장 사회에 대한 절대적 환원론 신봉자들도 무력한 상태로 남겨"지게 했고, "기존 체제의 해체, 심지어는 붕괴의 가능성이 더 이상 배제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러면서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좌우를 넘어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양편은 모두 한 주요한 사상가에게 되돌아가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1848년에 그가 예견했듯이, 이 사상가의 본질은 자본주의에 대한 그리고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어디로 향할지 깨닫지 못했던 경제학자들 모두에 대한 비판이다. 시장은 주요한 위기들 사이에서조차 21세기를 마주하는 주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명백하다. 유지하기 어려운 이윤을 추구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무제한적이고 갈수록 기술 집약적인 경제 발전이 전반적인 부를 창출하기는 하지만, 생산, 인간 노동, 덧붙이자면 세계의 자연 자원이라는 갈수록 불가결한 요소들을 희생한 것의 대가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경제적, 정치적 자유주의는 단독으로든 아니면 결합되어서든 21세기의 문제들에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없다. 다시 한 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

헤게모니 교체를 위한 정치

역사를 명료하게 분석하고 이를 통해 "헤게모니 교체를 위한 정치를 복원"시켜, 자본의 독점적 권력과 이와 손을 잡은 정치권력의 동맹 체제를 해체하는 것,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홉스봄의 조언과 일깨움은 그래서 깊은 경청의 가치를 갖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불합리를 바꾸어나갈 세력 교체의 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항상적 위기에 시달릴 것이다. 마르크스를 다시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시대에서 이전과는 다른 "장기 21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장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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